비금도
아름다운 산. 아름다운 섬. 신안 비금도.
새벽 첫 배를 타고 비금도에 도착했다.
말로만 듣던 섬에 직접 오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이 섬을 처음 들은 건 벌써 십 년도 더 되었는데,
그땐 여길 직접 와 볼 엄두를 못 냈다.
급한 성격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 투성이었으며,
연애도 인생도 서툴렀던 이십 대 초반.
생각 없이 말을 내뱉고, 영혼에 귀 기울이지 않는 선택을 하고선
뒤돌아 끙끙 앓고 후회하던 나의 이십 대.
그때의 내게 기다림은 너무 길었고,
비금도란 섬은 너무 멀었으니까.
뭐 지금도 성격 급하고, 세상에 이해되는 것은 거의 없다.
여전히 서툴고, 즉흥적인 선택을 하지만.
도대체 비금도와 나의 거리는 왜 이렇게 먼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했던 그 시절과 조금 다른 점은.
세상만사는 원래 머리로 이해할 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것과,
거리가 멀다는건 마음이 멀다는 것이고, 기다림도 삶의 일부라는걸 알게 된 것.
아무튼, 비금도에 왔다.
비금도가 고향인 친구에게 오랜만에 안부를 물으며, 비금도에서 어디가 갈만한가 물어보았더니 우선 산을 오르라고 한다. 등산을 좋아하는 친구니, 산이 제일 먼저 나오는 게 당연하리라. 하느넘 해수욕장과 명사십리 해변도 꼭 가볼 만 하다며 추천해준다.
선착장 앞엔 도보여행 안내도를 보니 75km 정도의 도보 여행길을 마련해 두었다. 이 거리를 하루에 걷기엔 무리다.
자, 그럼 우선 가볍게 산에 다녀와서 해변으로 가자!
대중교통이랄게 거의 없고 택시나 자전거로 이동을 하는 게 좋다고 들었는데,
배에서 내리니 버스가 한 대 있다.
이건 순전히 운이 좋아서 그런 거다.
섬 곳곳에 정류소가 있긴 하지만,
실제 버스를 타고 섬 여행을 하기에는 버스가 너무 띄엄띄엄 다닌다.
그래도 섬이라 그런지 택시비가 내륙보다 비싼 편이니, 운 좋게 버스를 마주쳤다면 버스로 움직이는 게 좋다.
상암에 내려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다도해 경치가 일품이다.
비금도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다란 바위는 초록 옷을 걸치고 위용을 뽐낸다.
파란 하늘과 참 잘 어울리는 곳이다.
이 아름다운 바위산을 넘고 넘고 또 넘다가 몇 개나 넘었나 가물가물해질 때면 정상에 도착한다.
높이는 겨우 해발 255m로 정말 동네 뒷산 수준이지만,
그 동네 뒷산을 여러번 넘어야 도착한다.
산 입구부터 정상까지 계단을 올라야 하면 심심한데, 흙과 바위를 밟고 올라가는 맛이 있다.
문제는 내려올 때다.
많은 사람이 하느넘 해변 쪽으로 내려가는데, 명사십리 해변을 가려고 다른 쪽으로 내려왔더니 경사가 가파르고 힘겨웠다.
얼마 전에 다녀온 한라산도 이렇게 힘들진 않았는데, 다리에 힘이 빡 들어간다.
딱히 등산을 즐기는 편은 아니라 산을 많이 오르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지금까지 살면서 오른 산 중에 가장 내려가기 힘든 곳이었다.
산을 다 내려오자마자 돗자리 깔고 앉았더니 천국이 따로 없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살랑살랑.
낮잠이라도 한숨 자고 싶다.
그런데 그늘에 좀 앉아있었더니 추워져서 명사십리 해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마을 구경도 하고,
파꽃도 보며 걸으니 어느새 명사십리 해변이다.
입구에서 장승 둘이서 웃으며 반겨준다.
잔잔한 바다에서 파도가 일더니 모래사장을 철썩 때리고는 하얀 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철썩.
처얼썩.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어느 날에는 그 기억이 해일처럼 크게 일어섰다가,
다시 바닷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비금도 여행정보
http://korean.visitkorea.or.kr/kor/inut/where/wheremainsearch.jsp?cid=126821
http://tour.shinan.go.kr/home/tour/watch/watch06/watch06_02/show/88?page=1
비금도에서 이용한 택시 연락처
010-4606-5894